싸워라 KBS
싸워라. KBS
작년에 그 홍역을 치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홍역에 면역이 되었으리라 짐작했음인지 '어부지리' 차지한 뜽금없는 사장 치세를 걷어 치운 자리에 기어코 공수부대가 투입됐다. 그 이름도 빛나는 KBS 공채 1기가 왜 낙하산이냐고 나경원 의원이 뾰루퉁해 하지만 낮은 포복만 하던 원단 땅개도 낙하산을 태우면 공수부대가 된다. 더구나 그 낙하산에 남대문짝만하게 "MB 언론 특보"라는 명함이 찍혀 있음에랴.
1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나라에서 6년 전의 일을 되짚어 무엇할까마는 KBS 구성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특보를 지낸 인사를 대공포로 쏘아 떨어뜨렸다. 그가 비록 KBS의 공채 1기가 아니었다고 해서, 또 방송인 출신이 아니라 해서 비토한 것이 아니었다. 그 개인의 자질에 대한 폄하와 모욕도 없었다.
단지 한 나라의 언론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위인이 최고 권력자의 '오른팔'이나 '멘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상식이 그 대공포탄의 주재료였다. 또 언론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적 정당에 참여하고 아무개를 당선시키고자 '개와 말의 수고'를 다하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에 해당하나, 그 공의 댓가로 주어지는 하사품 목록에 언론사의 사장 명패가 포함될 수는 없다는 믿음이 대공포의 포신이었다.
상황이 바뀌었고 역사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똑같은 형태의 낙하산이 떴다. 그 낙하산이 안착하게 된다면 세상을 상대할 면목이 치명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다름아닌 KBS 구성원들, 바로 당신들이다.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다. '그때 그때 달라요~~'라는 개그쇼를 하는 입으로 어찌 정의를 논할 것이며 '나는 내 일만 할 뿐이고~~~'고 눈 가린 경주마 행세를 한다면 그 등에 누구를 태울 것인가. 6년 전의 대공포를 기억하라. 당신들의 힘으로 대통령이 내려보낸 낙하산을 날려보냈던 그 기세를 기억하라. 당신들이 싸워야 할 첫 번째 이유다.
싸워라 KBS
그 대공포를 쏘아 보았다고 해서, 한 공수부대원을 날려 버렸다고 해서 무던히도 우쭐댔을 KBS 구성원 여러분. 여러분은 그 과거 때문에도 싸워야 하지만 여러분의 오늘을 위하여도 싸워야 한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여러분이 누리는 안락과 호사의 댓가를 이 싸움으로 치러야 한다. 지금 당신들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는 당신들만이 사수해 온 것이 아니고, 현재 당신들이 향유하는 '신의 직장'의 지위는 당신들의 능력만으로 따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이미 방송계에서 그 직위와 권리가 보장된 귀족의 반열에 올라 있으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필연적으로 따라붙는다. 당신들이 마지막으로 사수해야 할 권리이고, 최소한 외면하지는 말아야 할 의무가 바로 이 싸움이다. 아니할말로 당신들은 하늘이 알게 저항해도 잘리지 않지 않는가. 어디 연수원에 처박히고 한직을 맴돌지언정 연봉은 해가 갈수록 쌓여 가고 그 신분증은 강철로 만들어졌지 않았는가.
법으로 보장된 직위와 단결의 권리를 가진 KBS 구성원 여러분. 이미 그 사실만으로 당신들은 이 싸움을 치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지금 당신들은 모욕당하고 있다.
권력에 빌붙음으로써가 아니라 권력과 불화함으로써 쌓아올렸던 것이 당신들과, 당신들의 동업자들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였고 당신들의 어깨에 힘 들어가게 하는 영향력은 그로부터 나왔다. 그러기에 임기 한 달 남겨 놓고 대통령을 탄핵한 덜떨어진 패거리들이 방송사에 찾아와서 물 한 잔 안 주냐고 거들먹거려도 물은 셀프라고 쏘아부칠 수 있었고, 설사 당신들이 아닌 외부의 방송 종사자라 하더라도 누가 부당한 압력을 넣을라치면 "때가 어느 때인데"를 일갈할 수 있었다. 지금 권력은 그 결기를 비웃고 있다.
그래도 작년에 그 난리를 치렀으면 포기할 줄 알았다. 아무리 대한민국 표준 시계가 거꾸로 도는 국방부 시계가 되었더라도 그래도 체면이 있고 양심이 남았을진대 허접한 동네 고스톱판에서도 지켜지는 낙장불입 원칙을 저버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바바리맨같은 권력이 휘둘러대는 거시기에 그저 꺅꺅 소리내며 피할 뿐이라면 그 바바리맨은 당신들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그 앞에 꿇어앉혀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기야 하겠냐고 묻는 자에게 되묻는다. 작년에 그 난리를 치고서는 또 김인규 카드를 들이미리라고 상상한 자 있는가?
싸워라 KBS
그리고 당신들의 미래를 위해서 싸워라. 불쾌할지 모르나 많은 이들은 이미 당신들을 믿지 않는다. 싸우는 시늉만 하다가 잇속 차릴 거 다 차리고, KBS의 그 많은 기둥들 뒤에 숨어 있는 놀고먹는 인력들 안전 보장 받고, 풍성한 연봉 잔치나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는다. 더우기 지금 노조 깃발을 움켜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투쟁이라는 단어는 가끔 대통령께서 도덕성을 말씀하실 때보다도 더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한 뒤 언론계에 당근 폭탄이 퍼부어지면서 가장 형편이 나아졌던 곳 중의 하나가 KBS였다. 그러나 형편이 나아진 만큼이나 형편없이 멸시를 당했던 때도 그때였다. 우리 집은 KBS를 보지 않습니다 스티커가 날개돋친 듯 전국으로 퍼졌고, 땡전뉴스의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꿋꿋이 '오늘 전두환 대통령'과 '한편 영부인 이순자 여사는'으로 뉴스를 장식했었다. 그 과거를 당신들의 미래로 삼지 말 일이다.
물론 때가 어느 땐데 하는 핀잔이 돌아올 것을 안다. 아무렴 천하의 김인규 참모라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아호를 '청계'에서 '오늘'로 바꾸라고 강요하기야 하겠는가. 여러분의 미래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정부의 압력이 아니라 그와의 담합이다. 그리고 그 담합은 달콤할지 몰라도 결국 언론이 마땅히 드러내야 할 송곳니와 어금니를 썩게 만들 것이고, 결국 이빨 빠진 언론은 꼬리를 흔드는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개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때 다시금 여러분은 사회의 공적이 될 것이다. 물론 등은 더 따뜻하고 배는 더 부르겠지만.
싸워 봐라. 한 번. 최소한 김인규 참모가 연말 방송 대상 시상식에 나비 넥타이 매고 나타나는 모습은 막아 주길 바란다. "이명박 후보의 취재 일정 및 코디, 출연진, 인터뷰 내용까지 면밀히 체크한" 대선의 일등 공신 김인규 참모가 어느 자리를 못 가겠는가. 까짓거 정연주 전 사장 해임이 계속 무효 판결을 받을 경우 책임지겠다고 공언한 최시중씨의 후임으로 보내도 좋고, 학부모에게 세뇌당했네 어쩌네 하는 지극히 비문화적인 장관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들어앉혀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KBS 사장만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려서도 안된다. 그 이유는 김인규 참모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대선 때 특보를 안하려고 수차례 고사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하게됐는데 그게 멍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 본인의 변이다. 수 차례 고사해야 했던 바로 그 이유가 오늘의 김인규 전 특보가 KBS사장에 앉을 수 없는 근거일 것이며, 그것이 멍에가 되고 만 것 역시 그 자신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사장을 하겠다고 나서고, 전 특보의 주군은 기어코 시키겠다고 우긴다. 이래도 싸우지 않는다면, 그 강력한 노조와 신분 보장의 특권을 가지고도 시늉만 하고 말겠다면 그냥 밥숟갈 놓고 이슬이나 먹고 살 일이다.
싸워라 KBS. 당신들이 잘린다 한들 기륭전자 노조원만큼이나 풍찬노숙을 하겠는가? KTX 여승무원들만큼이나 사람들이 몰라보겠는가? 기껏해야 어디 좀 외지기는 하지만 경치 좋은 중계소에 가거나 연수원쯤에 가서 유유자적 월급 받으며 권토중래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싸워야 할 일에 마땅히 떨쳐 일어나 싸우지 않는다면 그것도 일종의 직무유기다. 그리고 직무유기의 결과로 당신들은 그 이름도 유명한 루저의 작위를 얻을 것이다.
나는 KBS를 루저 아닌 위너로, 너무 반듯해서 탈이긴 하지만 지킬 건 지키고 할 일은 하는 박카스 청년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제발 싸워 줘라 KBS. 당신들이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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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자의 허락을 받고
사내 게시판에도 글을 올렸다.
이 글의 뜨거움에 공감을 보내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그 과정은 지리멸렬하게 복잡하다는 것.
그래도, 개운한 글.
# by | 2009/11/23 14:03 | 뉴스비평 | 트랙백 | 덧글(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