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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 제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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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주소로.


단막극 제작기 30 - Epilog 제작기

 

6월 초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한 달 안에 마무리 하려던 제작기가 늘어지고 늘어지더니 결국 석 달이나 걸리고 말았다. 이제 두 달 있으면 데뷔작은 방송 1주년이 된다. 참 오래도 걸렸다.

 

프롤로그에 썼던 제작기의 위험에 적당히 발 적셔 가며 여기까지 왔지만, 앞으로 이런 제작기를 공개적으로 계속 쓰는 일은 다른 이유로 더 어려울 것이다. 협업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다. 제작기의 기록 한 줄도 참여한 사람의 역할과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낳게 된다. 누군가에겐 저격이거나, 오해이거나, 비밀이거나,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문제없이 해결된 일들은 쓰기는 좋아도 기록의 가치가 떨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쓸 것이 많을수록 더욱 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래도 이 단막극 제작기는 나와의 약속이었다. 내게 주어진 두 번의 단막극, 잘 곱씹어 기록해 놓고 싶었다. 어쩌면 하나의 졸업 작품과 하나의 방송 데뷔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액자가 된 소녀>는 악기 치고 연극하던 시절부터의 나를 꽉꽉 눌러 담으려고 했던 일종의 졸업 작품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든 것이라 그 시간 내내 쌓인 의미와 책임, 그리고 연출에 대한 나의 모토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부담이 컸다. 출사표이자 중간 정리였다.

 

반면 <머리 심는 날>은 오랜 시간의 짐은 훌훌 털었으나 너무 급하게 착수된, 그리고 보다 편안하게 보도록 기획된, 그야말로 방송 데뷔작같았다. <액자가 된 소녀>보다는 작품과의 심리적 거리를 더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액소>가 스승과의 인연이 내 삶과 포개졌다면 <머심날>은 첫 출산과 포개져 결국 또 바짝 내 삶과 붙어 버렸다.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이 나와 거리를 유지하다 덥석 포개지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단막극이 TV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갖는 존재감은 미미하다. 그래도 이 장르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전달하고자 했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화려한 구경거리가 있는 굿판이 드라마의 전부는 아니다. 구구절절 사연 많은 장편소설보다 청아한 단편소설이 포착하는 시적 아름다움이 있듯이, 미니시리즈를 비롯한 연속물이나 장편 영화가 갖지 못한 관점과 표현이 숨표처럼 존재하는 것이 TV 단막극 장르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관점이 단막극 장르를 설명하는 대표적 관점이 될 수는 없다. 장르를 정의하는 일은 실은 시청자의 몫이다. 결국 시청자가 깊게 공감하고 찾아주는 단막극이 그 장르에 대해 대표성을 갖게 되기에. 더욱이, 모바일로 시청환경이 변해갈수록 간결함의 가치는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잘 만든 단막극의 가치 또한 빛나지 않을까.

 

지금까지 관심을 갖고 보아주시고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



단막극 제작기 29 - 나머지 이야기 (머리 심는 날) 제작기


   

- 나머지 이야기

 

1. 선배의 격려

 

촬영 나가기 전 대본을 수정하면서, 내 다음 방송인 <웃기는 여자>의 김형석 선배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형석 선배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연출자로서 많은 로맨틱 코미디를 연출해 오신 분이다. 단막에서는 이선균 황우슬혜의 <조금 야한 우리 연애>나 이희준 박수진의 <큐피드 팩토리> 등의 작품이 있다. 형석 선배와 대본 수정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던 차였다.

 

- 뭐가 웃기는 건지를 판단하기가 참 어렵네요. 좋은 대안을 내기도 어렵고요... 대본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왜 코미디를 이렇게 급박하게 해보려고 했는지.......

 

형석 선배는 나를 격려해주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 특히 코미디를 준비하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들 거야. 진지한 작품을 하면, 잘 안 되면 의미라도 남고 작품의 스타일이라도 남지. 코미디를 준비하다 잘 안되면 죽도 밥도 아니고 그냥 바보 되는 거 아닌가하는 불안.

 

- 네 맞아요. 정말 그런 거 있는 거 같아요.

 

- 그런데 말야. 그래도 사람들은 코미디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기운 내서 재밌게 해.

 

맞다. 나도 그 마음이었다. <머리 심는 날>이 쉴 새 없이 빵빵 터지는 종류의 코미디는 아니지만, 그냥 피식피식 웃으며 부담 없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와 위로를 주고 싶었다. 형석 선배의 말은 내가 초심을 잃지 않게 하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격려를 해주신 형석 선배도 <웃기는 여자>를 준비하는 내내 엄청난 고뇌와 고민에 시달리셨다. 정말 모든 연출들에게 있어서 매 작품이 인생 최대의 위기라는 말이 맞는가 보다.

 

2. 서로를 궁금해 한 두 배우.

 

방송이 나간 후, <액자가 된 소녀>의 재균이를 사석에서 만났다. 재균이는 <머리 심는 날>을 잘 봤다며 태환이에 대해 궁금해 했다.

 

 

- 어 그 배우 분 되게 잘 하시던데요? 뭐하셨던 분이에요? 저도 이마는 넓은데...

 

반면 태환이는 <액자가 된 소녀> 미팅에서 떨어진 후 이를 갈면서 본편을 봤다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잘 하나 보려고. 그런데 보고 나니 재균이가 진짜 그렇게 잘 하더란다.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고 궁금해 하는 이런 훈훈한 관계라....... 언젠가 둘을 같은 화면에 잡게 된다면 나와 두 배우에겐 꽤 흥미로운 순간일 것이다.

 

3. 끝내고 나니.

 

<머리 심는 날> 제작기를 쓰면서 방송을 다시 돌려보니, 괴로움 투성이다. 12일부터 구체적으로 대본 회의를 하기 시작했으니, 대본이 아예 없는 맨땅에서 85일 만에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니 허술하게 넘어간 부분이 보이고, 다시 찍고 싶은 부분도 보이고, 이야기 자체의 판도 아쉽고...... 아마 모든 연출이 그럴 것이다. 급하게 진행하느라 놓친 것들이 보이면 참 속상하다. 위로할 거리가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것? 2015 드라마스페셜 시즌1 4편은 사실 모두 꽤 급하게 제작되었다. (그래도 초고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한 건 내가 유일하다. 험험) 편성 상의 의사결정이 늦어진 탓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급변하는 의사결정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방송의 짜릿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짜릿하기야 하다. 탄내가 나도록. 탄내 말고 좀 좋은 요리 향기를 풍겨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만들고 보니 내 새끼라고 귀엽긴 하다만.

 

방송을 내고 흥미로웠던 건 <액자가 된 소녀><머리 심는 날>의 지지자들이 달랐다는 점이다. <액소>를 잘 본 사람은 <머심날>이 별로였다고 하고, <머심날>을 재밌게 본 사람들은 <액소>보다 낫다며 가차 없이 말해 주었다. 두 작품은 각각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와 타깃 시청층이 다르기는 하다. 그래도 지지자가 갈린다는 건 흥미로웠다. 내 입장에선, 두 편 다 나다운 것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그리고 드디어 나는 예정일보다 열흘이나 일찍 태어나 삶의 시작부터 자기 아빠에게 한 방 먹인 아들과 회복 중인 아내를 만나러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드라마를 업으로 하는 이상에야 늘 청춘 남녀를 다루게 되겠지만, 이런 식의 청춘 이야기는 아마도 다시 하게 될 일이 없을 것 같다. 이미 졸업했다고 생각한 콤플렉스 가득한 청춘 상자의 뚜껑을 열고 다시 그 속을 헤집는 일은 웃기지만 슬펐기 때문이다. 어른이 모자란 시대에 나까지 청춘을 연해서야 되겠나. 앞으로 나아가야지, 내 주인공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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