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편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보기 너무 힘들다. 실감나는 신체 훼손은 정말 무섭단 말야.
사람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기술은 뛰어나다.

호우시절

팬시하다. 연애의 순간을 같이 하고 있는 감수성은 좋다.
하지만 난 여전히 '봄날은 간다'의 애수나 '행복'의 지독함이 더 좋으네.

디스트릭트 9

비호감 주인공을 응원하게 만드는 플롯. 그리고, 권력을 지닌 보수주류가 어떻게 소수를 탄압하고, 어떤 처지에 이르러서야 소수와 연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보고서. 희망이 좀처럼 보이는 건 아니지만 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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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극장에 가질 못한다...연극을 본지는 너무 오래된 것 같다.

by 탄이 | 2009/10/28 01:59 | 영화 | 트랙백 | 덧글(2)

단념

모 선배가 나에게 냉소주의자를 두 부류로 나누었다.
'태도로서의 냉소'를 취하는 사람이 있고 '수사로서의 냉소'를 취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용어 선정은 그리 적확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 개념 구분은 꽤 흥미로웠다.

끝없는 열정가로 보이는 사람은
사실 자기 자신의 욕망에 이기적으로 집중하기 때문에
그토록 열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집중할수록 타인에겐 애초에 기대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기와는 다르게 타인에 대해 근본적으로
냉소를 전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태도(전제)로서의 냉소주의자.

그리고
기실 차갑고 냉소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사실 타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그와 소통이 가능하기를, 그가 도덕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기를,
그가 나의 마음을 이해하기를, 그가 올바른 행동을 하기를...... 이런 기대들이
현실적으로 아주 드문 순간순간에만 성취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잦은 기대가 좌초됨으로써 오는 스트레스를 막기 위하여
수사(표현)로서의 냉소를 취한다는 것이다.

보여지는 이미지와
근본적 마음의 태도는
상반된다는 이론인데,
거칠긴 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대입해가며 놀기 좋은 공식이다.

최근에 어떤 단념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로써 내가 가진 냉소의 뿌리가 뽑힌 기분이 든다.
나의 냉소가 전제로 하고 있던 사람에 대한, 세상에 대한, 나에 대한
어떤 기대가 무너진다.
그 기대가 깨지니 나 자신이 품고 있는 욕망이 선명해진다.

이것은 성숙이 아닌, 강요된 성장이다.
선배의 거친 구분에 대입하자면
'수사(표현)로서의 냉소주의자'에서 '태도(전제)로서의 냉소주의자'로 전이 중인 것이다.

(쓰다 보니, 태도 -> 전제로서의 냉소/ 수사 -> 표현으로서의 냉소
이렇게 바꾸는 게 더 맞는 표현으로 보인다. 어쨌든,

의외로 평범한 이야기다.
세상과 이상에 대한 기대를 단념하고
나, 내 가족, 내 새끼에 집중해서 한 세상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들이 '전제로서의 냉소주의자'이며

그 전제를 인정할 수없어 괴롭게 몸부림치는 새로운 세대가
'표현으로서의 냉소주의자'들이 될 것이다.

그렇고 보면, 청년 정신이란 세상에 팽배한 단념과 욕망을
냉소하는 정신인 것 같다.
청년에게, '냉소는 나의 힘'인 것이다.

냉소를 동력으로 버텨오던 내가
냉소를 단념하게 생겼다.

다음 동력은, 몰염치한 욕망의 성취일까
아니면 주변 상황에 맞춘 자그마한 마취성 목표들일까.








by 탄이 | 2009/10/28 01:26 | 탄이's 다이어리 | 트랙백 | 덧글(4)

[탐나는도다] 마지막 회, 어떤 간절함.

 방금 '탐나는도다' 마지막 회를 봤다. 나는 이 드라마를 사실 잘 모른다. 오늘 처음 봤기 때문이다. 다만 만화가 원작이며 판타지 사극이라 주말 연속극 시간대에 들어가기 무리일 것이라는 의견과, 시청률 저조로 조기종영을 당한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마지막회를 지켜본 것은 '텐아시아'에 실린 김미경 씨의 인터뷰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 인터뷰에는 작품에 대한 진득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마지막 회만 보고 이야기에 대해 뭐라고 할 수는 없으나, 드라마를 휘감고 있는 정서, 톤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느낀 것은 어떤 간절함이다.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켜내고 싶은 간절함. 보내고 싶지 않지만 보내야 하는 안타까움, 미처 성취하지 못해 주저앉는 악역, 그 모든 이야기가 어떤 간절함의 정서 속에서 동화처럼 직조되어 있었다. 서우와 임주환, 이승민, 황찬빈 모두 자기 몫의 간절함을 뿜어내고 있었고 화면은 자기 세계의 완결성을 지켜내고 있었다.

 특히 잠시나마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던 것은 김미경 씨의 연기였다. 지키러 가자며 옷고름을 푸는 여인네들의 모습에서, 김미경 씨의 연기에서 느낀 것은 '기품'이었다. 단 한 컷이었지만 정말 그녀라면 이들을 이끌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나설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헤엄쳐 가는 해녀들, 그리고 그들이 결국 지켜낸 탐라. 그 탐라를 아름답게 여기며 떠나가는 이방인. 공동체의 정서. 탐나는도다에는 어떤 간절한 손짓이 느껴지는 듯 했다.

 드라마의 감상은 시청자의 몫이다. 나 역시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만 보고 과대평가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지키고자 하는 공동체를 지켜내는 범부들의 모습과 인연을 떠나보내거나 손을 맞잡는 청춘들을 보며 잠시나마 꽤 진실한 위로를 받았다.



by 탄이 | 2009/09/27 21:06 | TV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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