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좋지 아니한가] 최악에 비해선 좋지 아니한가.

  대안가족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착한 영화의 '대안'적 소재가 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가족사 속에 스며든 비밀에 절망하는 대신 그걸 받아들이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 혹은 적극적으로 혈연이 아닌 가족 구성을 하는 사람들. 가장 최근에는 <가족의 탄생>이 직접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이를 내세운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한 가족을 이루기까지의 내력을 따라가며 '가족'의 대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좋지 아니한가>는 엄밀히 말해 대안이 아니라 위로다. 가족 안에서 절망하는 이들에게, 조금만 더 멀뚱멀뚱하게 눈을 뜨고 감정 과잉을 좀 억누르고 보면 실소가 비져나오다가 애틋한 마음도 드는, 그런 것이 가족이라고 보여주고 있다. 일단 가족관계 안에 들어오면 '인생을 바꾸는'것이 아니라 '인생을 유지하는' 것에 힘을 쓰게 된다. 갖은 수모를 이기며 월급을 타다 가족에게 바치는 아버지. 식순이 교양없는 어머니. 얹혀 사는 무협 소설가 노처녀 이모. 10대 아들 딸. 답답하겠지. 답답해서 미칠 것 같겠지. 별 볼일 없는 가족 안에서 별 볼일 없는 인생을 부여받아 살고 있는 건, 왜 하필 나일까.

 <좋지 아니한가>에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건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다. 세상은 온갖 위험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그나마 우릴 지켜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한다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생각을 바꿔보세요, 더 나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영화의 덤덤하고 세련된 유머에 비해 어찌보면 상당히 보수적인 가치관이다.

 하지만 가족을 대하는 자세에서 이 영화는 보수적일 수 있는 위험을 벗어난다. 감독은 가족의 보수적 가치를 역설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한 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가족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떠나서, 가족은 외로운 사람들이 같이 밥먹고 사는 집단이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아들딸로서의 역할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외로움을 나누고 어깨를 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이 영화에서도 참으로 열심히 달린다. 전작 '말아톤'에서 보여준 감독의 달리기 철학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 사람은 솔직해진다. 오로지 내 심장과 근육이 지탱하고 있는 내 몸을 직시하게 된다. 가족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하는 듯하다. 다른 생각 다 집어치우고, 저기 서로서로 기대며 서있는 외로운 사람들이 보이지 않냐고. 가족 구성원을 외로운 인간 존재로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연애를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거리를 조절할 수가 없기 때문이며, 대등한 관계로 시작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역할론이 아니라 '인간을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ps.

1.순정적인 이야기인 '말아톤'에 비해 훨씬 세련된 감각을 요구하는 영화였다. 세련됨과 작위 사이의 줄타기에서 '무심한 듯 쉬크하게' 이야기를 푸는데 '대략'은 성공한 듯.

2. 셰익스피어 희극의 관찰자 광대 같은 역할을 하는 영화감독 지망 고교선생 박해일의 역할이 재미있었다. 음유시인의 계보는 이렇게 이어져 가는 거다.


 

by 탄이 | 2007/03/21 17:22 | 영화 | 트랙백(1) | 덧글(5)

트랙백 주소 : http://pegase.egloos.com/tb/306527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at 2007/04/02 19:30

제목 : 좋지 아니한가
영화 속의 가족은 완전하지 않다. 아니 온통 문제투성이다. 하지만 유대감 약한 이 콩가루집안의 모습은 분명 우리네 삶과 닿아있고, 그리 낯설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지구에서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듯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한다해도 상대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당연하겠지만). 다른 구성원을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행위 - 각각의 구성원 시점에서 다른 구성원을 비춰주던 식사장면은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 들은 필연적으로 문제들을 ......more

Commented by turtlebar at 2007/03/24 17:39
내 세계를 꾸리다 문득 가족을 바라보니 누군가의 한 생이 보이더군요.
그러다 철이 들어버리는 것이, 살면서, 우스운 장난.

박해일..기사 윌리엄, 초서가 그렇다니까요^^ 후훗
Commented by 탄이 at 2007/03/25 01:41
기사 윌리엄, 보고 싶다니까요! ㅋㅋ

드라마에서 참으로 재미없게 표현하곤 하는 밥상머리에 앉은 가족 씬이 재미있게 묘사되고 있어요. 대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반응이 중요한, 그런 그림들.
Commented by turtlebar at 2007/03/25 14:43
그림책에서도 가장 자주 등장하는 씬이 밥상머리 장면이래요.
꼭 봐야겠는걸..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4/02 19:29
대안가족이든, 그렇지 않든간에 결국은 인간관계죠.
맘에 안드는 부분도 있는거고, 모르는 부분도 있는거고.
둘 모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보수적이라면 보수적일 수도 있겠지만, 보수적이라고 다 나쁜건 아닌 것 같아요.
결론? 저는 좋더군요. 딱 한 장면빼고.
Commented by 탄이 at 2007/04/02 23:39
그냥 노력뿐만이 아니라 엄청 머리 쓰고 눈치도 보고 요령도 부리고 진심도 있어야 하는,
극강의 인간관계인 것 같아요, 가족관계는.
음, 그 한 장면이 뭔지 궁금하네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