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들을 재워라, 내 동생을 재워라!

 

 

6월 1일 새벽, 물대포의 좁고 긴 주둥이가 껄떡 거리며 시민들에게로 향했다. 표정 없는 쇠 주둥이에서 포물선이 아닌 직선으로 주욱 뻗는 물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아름다울 정도로 곧은 직선은 시민의 얼굴을 강타하여 안경들을 날렸다. 이것은 분명한 위험. 서서히, 그리고 집요하게 깃발을 든 시민을 향해 움직이던 주둥이는 2미터도 안 되는 아래에 있는 시민에게 90도로 물대포를 찍어내렸고, 깃대는 바로 부러졌다. 시민은 몸이 축 늘어졌다. 저 공포스러운 주둥이는 영화에서 본 에일리언의 주둥이와 흡사했고, 찢긴 깃발을 든 채 늘어진 시민은 레미제라블에서 봤던 저항군의 모습 같았다. 픽션을 통한 겪을 법하지 못했던 간접경험들이 순식간에 눈 앞에서 재현되는 것을 보며 잠시 멍해지는 순간, 내 눈을 향해 물이 쏟아져들어왔다. 악!

 

‘발 밑을 봐주세요! 안경을 찾아주세요!’ 시민들의 외침에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발 디딜 틈도 없던 집회 거리는 순간적으로 약간 씩의 틈이 생기더니, 기어이 안경을 찾아 주인에게 돌려주며 미소를 전한다.

 

미소를 전하기 무섭게 다시 전경들과 맞부딪친다. 표정들이 얼어있다. 맨 앞에서 시민이 다치지 않도록 젊은 남자들이 스크럼을 짜고 있다. 순간적으로 한 자리가 비고 위험해 보인다. 나도 모르게 그 앞으로 밀려들어가 양 옆의 사람과 손을 꾸욱 마주 잡는다. 안전을 위해서. 서로의 체온을 전하며 우리는 눈길을 나누었다. 어설픈 미소가 우리 입에 어린다.

 

코 앞의 전경들에게 가르친다. 방패를 더 내려라. 위험하다. 지금 너무 높아. 전경들의 눈빛엔 초점이 없다. 이 중엔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일을 해야 해서 죽도록 괴로운 놈도, 혹은 손톱만한 공권력을 이용하여 신나게 시민을 패는 미친 놈도 있으리라. 순간적으로 밀린다. 발이 허공 중에 살짝 뜬다. 가슴팍으로 방패모서리가 찍혀온다. 숨이 막혀 얼굴을 찡그린다. 전경들이 복명복창한다. ‘버티기만 해! 버티기만 해!’ 지휘하는 젊은 전경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린다. 발이 다시 자리를 찾고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주물러 준다. 잠시 군복무를 마친 한국 남자로써 젊은 후배들이 안 돼 보이.......려던 순간, 새로운 명령이 전달된다. 삼보 앞으로! 그리고 복명복창. 삼보 앞으로! 서서히 밀려오는 방패. 다시금 허공 중에 뜨는 발. 순간 찢어지는 목소리로 악을 썼다.

 

나오지 마. 왜 너희가 나와야 해! 너희 제대하고 평생 후회해! 나오지 마!

 

이 순간이 너희에게 죄의식으로 남지 않기를. 너희의 가치관을 비틀어놓지 않기를.

뒤에서 새된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경들을 재워라! 내 동생을 재워라! 전경들을 재워라! 내 동생을 재워라!

 

나는 울었다.

 

 

by 탄이 | 2008/06/02 03:19 | 뉴스비평 | 트랙백(1)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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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VZPOMINKA at 2008/06/02 22:31

제목 : 제발
전경들을 재워라, 내 동생을 재워라!요즘 뉴스를 보면 정말 많은 눈물이 난다.그리고 이 글을 보고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어째서 우리끼리 싸워야 하는걸까. 어릴적에 처음 전경의 기억은 나쁘지 않았다. 시위대 속에 피흘리는 학생들이 도망다니고 그들을 쫒아다니는 전경은 무척 무서웠지만, 최루탄에 콜록대던 내게 딸기 하나를 건넸다. 미친놈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쉽사리 일반화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무엇보다 현......more

Commented by clytie at 2008/06/02 03:42
정말...눈물이 나옵니다. 제 동생이 얼마전에 제대했다고 안심하고, 전의경 안간거 안심했던 제가 부끄러워요.
내 후배들을, 동생들을 쉬게 해줬으면 합니다. 윗대가리들 지네가 하라고!!!!!
Commented by 그러니까 at 2008/06/02 05:05
한 11시쯤 되면 다들 들어가서 주무세요.
Commented by dd at 2008/06/02 08:45
왜 우리가 그곳에서 싸워야만 합니까.
Commented by 둥글게 at 2008/06/02 09:06
하, 참았던 눈물 터졌습니다.
전경들의 멍-한 눈을 보고 있으면, 괴로워져요.

정작 잘못한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데, 우리가 서로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어요.
Commented by 다랑어 at 2008/06/02 09:07
아 진짜 눈물나요. 왜 내 동생들이랑 싸워야 합니까. 정말 윗대가리들, 국익어쩌고 선동하면서 쇠고기 수입하고, 대운하 뚫고, 각종 서비스 민영화 하려는 '년놈' 들이 나와야하는거 아닙니까?ㅠ_ㅠ
Commented by SoulbomB at 2008/06/02 09:13
촛불시위 막으려면 전경들 들여보내고 지들이 나오라고해!!!
Commented by 시안 at 2008/06/02 09:29
내동생을 재워라 ㅠ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ㅠ
Commented by Karma at 2008/06/02 09:35
트랙백 신고드립니다ㅠㅠ 학교에서 눈물이 왈칵 나오는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Commented by 국민의촛불 at 2008/06/02 09:45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35553
개신교회 "촛불난동 진압하러 10일 모인다"

개신교가 나서서 춧불집회 참여도 아닌 진압한답니다. -_-;;
Commented by iGen at 2008/06/02 09:51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전경을 동생으로 두고 있는 누나입니다.
동생이 시위대와 대치하는 밤이면 어머니 아버지도 같이 잠을 주무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빛을 멍하게 비우고서, 누나뻘 어머니 아버지뻘 되는 분들과
마주보고 있는 제 동생이 집에 있는 가족들을 떠올릴까 저도 착잡해집니다.
요즘 이글루스를 보면서 코멘을 적을 용기가 안 났는데... 글을 읽다보니 마음이 아파져 적어 봅니다..
시위하시는 분들도 제 동생도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ZeroDevice at 2008/06/02 18:13
... 아닌게 아니라, 30일/1일/2일 새벽까지 연속으로 엄청난 시위가 연속되서 그런지 몰라도...
... 2일 새벽엔 정말 초점을 잃고 있더라고요.
... 시위 구호를 외치러 갔었는데...
... 대치 하고 있던 녀석들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쓰던 분대장들 처럼 저도 그 녀석들 진정시키고 있더라고요.
... 글쓴 분처럼 똑같이 말했습니다.

... 방패만 두드려라, 밀치기만 해라. 천천히 나와라. 옆사람 어깨랑 맞춰라...

... 스크럼과 스크럼이 부딪혀서 밀기 싸움 들어가면 더 극성으로 외쳤죠.

... 방패에 몸 기대라, 뒷사람은 어깨로만 밀어라. 밀리지 마라, 밀리지 마라. 균형 잡아라...

... 전경 출신도 아닌 저 조차도 안쓰러워 지던데...
... 글쓴 분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니 기어이 눈물이 나고 마네요.
Commented by 리쓰 at 2008/06/02 22:26
제 동생같은 녀석이 지금 전경가있습니다. 뉴스를 볼때마다 무척 많이 우는데, 님 글을 보니 정말 많은 눈물이 나는군요..트랙백 신고합니다.
Commented by 햇비 at 2008/06/02 23:31
요즘은 이래저래 울게 되네요
우리가 이게 웬 고생이랍니까
Commented by 류사부 at 2008/06/03 12:59
에고.. 사태가 심각해 공감글들 둘러봤는데 이건 정말 좀 슬프네요.
Commented by 프랭키 at 2008/06/04 01:48
그때도 시위현장에서 전경이 된 친구를, 선배를, 후배를 마주한 적이 있었죠. 그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쥐박이가 그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바람에 다시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Commented by 탄이 at 2008/06/04 20:31
프랭키/반갑습니다! 네, 절대 돌아가지 않을거에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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