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길다고 해서 60%가량 줄여서 보냈더니 뭔가 상당히 김빠진 글이 되었다.
원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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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 3월 2일 파트너 제작 일지 중
그동안은 생각할 필요가 없던 질문이었다. 언제나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외주 제작사에서 기획안이 정해져서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연속극에서 늘 해야 하는 가족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법정 드라마. PD의 내부 기획에 신인 작가들이었다. 아직 1회 초고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2009년 3월 2일, KBS별관 5층 <파트너> 방에 4명의 PD와 4명의 작가가 모두 모인 첫 날의 제작 일지엔, 그렇게 최초의 질문이 적혔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우리는 벽면 가득히 전지를 붙였다. 1회부터 16회까지 번호를 매겼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나 둘 메모지에 써서 붙이기 시작했다. 관련 서적을 사들였다. 참고할 영화와 드라마를 돌려서 보았다. 법정 견학을 가고 변호사들을 인터뷰했다. 분업에 익숙했던 연출과 조연출들이 책상을 가운데 두고 얼굴을 맞대고 매일 새벽까지 인물과 이야기에 대해 토론을 했다. 때로는 고성이 오갔고, 종종 웃음보가 터져 벽을 타고 넘어가 지나던 선후배들이 기웃거렸다. 뭐가 그리 재밌냐고. 재미있었다. 내부 기획을 두고 다 같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무력감을 극복하게 해줄 비전이자 희망이었다. 이런 시간이, 이 일을 하고자 했던 이유였다. 입사 전 당연히 매일 같이 경험하리라 기대했던 업무를 3년차에 간신히 만난 것이다.

그러나 곧 현실적인 문제들이 불거졌다. 먼저, 제작비 문제였다. <파트너>는 ‘내부 기획(KBS PD + KBS 계약 작가) +자회사 제작(KBS 미디어) + 투자사’를 제작형태로 가정하고 추진되었으나, 투자사들이 저마다 한발만 밀어 넣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회사는 방송법상 협찬 수주가 불가능하므로 일반 외주 제작사보다는 한참 적은 제작비를 조달할 수밖에 없다. CP가 나서 투자사를 구하려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결국 적자를 예감하고 난색을 표하는 KBS미디어 측에 회당 제작비 1억 4천 만 원으로 방송 직전에야 우격다짐 협의를 마쳤다. (<파트너>가 요구한 회당 제작비는 1억 7천 만 원이었으며, MBC <선덕여왕>의 제작비는 회당 3억 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파트너>는 그래서 최근 4년간 가장 적은 제작비로 제작된 미니시리즈 중 하나가 되었다.

다음은 편성 문제였다. <매거진 알로>가 <파트너> 앞에 방송되기로 통보받으면서 우리는 1회 대본부터 재집필을 시작한 상태였다. 이 때 <매거진 알로>가 SBS <스타일>과 표절시비가 붙으며 편성이 갑자기 취소가 되었고, <파트너>의 편성이 당겨져 세 달을 생각하고 준비하던 드라마를 한 달 후에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허겁지겁 마무리한 대본도 대본이지만 캐스팅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제작비는 캐스팅 난항으로 이어졌다. 가뜩이나 변호사 연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배우들에게 개런티도 보장해주기 힘들다는 말을 계속 해야 했다. <파트너>는 출연료 지옥이었다. 두 로펌의 고정 인물들에, 사건별 주인공들에, 심지어는 방청석과 배심원석을 메울 보조출연까지. 최저 출연료가 캐스팅의 선결 조건이었으며, 방송 중에도 새로 급하게 캐스팅해야 했던 주요 연기자들에겐 연출과 조연출이 총동원되어 인연을 빌미로 통사정을 해야 했다.

여기에, 제목을 ‘아줌마’를 강조한 한글 제목으로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투자사도 없고 제작사도 결정을 미루고 있는데다 캐스팅도 덜 됐고, 편성까지 두 달이나 당겨져서 대본 수정도 중지하고 급하게 마무리하고 있는데, 제목을 변경하라니. 며칠간 백 개가 넘는 대안을 뽑아 올렸지만 ‘아줌마 변호사’식의 제목보다는 <파트너>라는, 내용에 맞는 제목을 포기할 수 없었다. PD들이 여러 차례 상소문을 올린 끝에 방송 열흘 전에 제목이 확정됐다. 그동안 제목이 없어 예고도 기사도 제대로 내지 못해 홍보도 미비했던 것은 또 하나의 악재였다.

편성은 한 달 전, 제목은 열흘 전, 제작사는 방송 직전에야 결정되고 투자사는 결국 못 구한 채 방송이 나갈 때, 본사는 미니시리즈의 합리적 최저 제작비를 맞추기 위해 투자사를 구하는 노력을 하는 대신, 시청률 연동제를 적용하여 추가로 500만원의 제작비를 깎았다. 결국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출연료를 아직 받지 못했다는 문의 전화가 계속 오고 있고, 작가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와 연기자들이 방송 전 협의했던 최소 금액의 10%를 추가 삭감 당했다.

급하게 당겨진 촬영 스케줄에 맞춰 세트는 간신히 들어섰으나, 현장에서 마주친 것은 몇 달 째 임금이 체불된 소품 팀 직원들이었다. 단일 미술회사가 맡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파트별로 아트비전과 계약한 형태라, 미술 감독의 지휘 통솔도 한계가 있었다. 임금 뿐 아니라 미술 제작비조차 지급을 못 받는 상황이 지속되자, 현장에서 태업을 하거나 그만 두는 사람이 생겼다. <파트너>를 하는 도중 무려 10명의 소품팀장, 팀원이 도저히 더 일할 수 없다며 제 발로 걸어 나갔다. 제작비가 들어오지 않는 현장에 남는 건 기존에 같이 했던 의리에 대한 믿음과 때때로 터져 나오는 윽박 뿐이었다.


<파트너>는 법정 장면에 6대의 카메라를 동원하여 중계차 녹화를 시도했다. 애초의 계획은 예능 버라이어티 녹화 시스템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었다. 연극 무대처럼 실시간 연기가 이루어질 때, 각종 액션과 리액션을 커팅 없이 가능한 VCR에 모두 녹화한 후, 멀티캠 편집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늦은 대본 때문에 대사 NG도 많았을 뿐더러, ‘커팅’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배우, 스태프 모두 적응을 못해 오히려 시간이 늘어지고 연기도 어색해진데다, 오디오 수음 등의 기술적인 문제도 잇따랐다. 결국 일반적인 드라마 녹화 시스템으로 중계차 촬영을 한 후, 추가로 필요한 컷을 ENG로 따는 형태가 되었다. 익숙한 체계로 돌아오자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각자 제 역량을 발휘했다. 법정의 현장성과 긴장감을 전달하는 데에는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 부족으로 애초에 생각했던 예능 촬영과의 접목을 더 시도해보지 못했던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나마 후반에 가선 대본이 늦어 중계차를 포기하고 ENG 카메라 2대 혹은 3대로 찍어야 했다.

대본 협의는 끝까지 어려웠다. PD끼리의 논의가 작가에게 충분히 전달되기 힘들었을 뿐더러, 성향과 취향도 많이 탈 수밖에 없는 대본이었다. 신인 작가들이다 보니 대본으로 평가받는 부분에 예민할 수밖에 없어, PD들과 허심탄회한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하거나 힘 있게 중심 스토리를 끌어가길 기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촉박한 시간에 A, B팀이 각자 촬영을 하며 논의가 진행되니, 오해와 다툼이 벌어질만한 상황도 속속 생겨났다. 그래도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서로의 최선을 믿으며 대본의 완성도에 기여하고자 했다. 오랜만의 내부 기획 드라마가 좋은 평가를 받아야 이후에도 내부 기획이 꽃필 수 있다는 책임감도 무거웠다. 모두 필사적이었다.

[두 연출과 조정주 작가님. 아직 어떤 미래가 펼쳐질 지 가늠할 수 없던 봄날]
<파트너>는 MBC의 <트리플>과 <혼>, SBS의 <시티홀>과 <태양을 삼켜라>와 경쟁했으며, 6.6%에서 시작해 13.7%로 막을 내렸다. 대체로 2위의 자리를 지켰으며, 최소의 제작비로 적절한 수준의 광고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파트너>에게는 보다 섬세한 평가가 필요하다. 단순히 수치로 따질 수 없는 공과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는 에피소드 식 구성의 전문직 드라마를 미니시리즈 시간대에 개척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국 드라마는 연속성에 무게를 두다 보니, 미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처럼 회당 에피소드의 완결성보다는 주인공의 인생역정에 더 초점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파트너>는 연속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여러 사건 케이스를 배열하여 각 사건의 주인공을 따로 둠으로써 형식적 변화를 꾀했다.
내용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방송 전에는 법정 씬이 지루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으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법정 씬에서의 분당 시청률이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최고 시청률을 냈던 최종회는 전체가 법정 씬으로만 이루어진 회였다. 이는 제작자들이 가진 기존의 선입견을 뒤엎는 결과다. 로열 패밀리 형제간의 대립이라는 가족 운명극과 활기찬 캔디 형 싱글맘 캐릭터, 그리고 불륜이라는 다분히 흥행을 의식한 코드를 드라마 안에 포진해 놓았으나, 정작 반응이 제일 큰 부분은 법정 씬의 긴장감과 갈등이었다.

그러나 <파트너>가 법정물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성취하지 못했다는 점도 분명하다. 과실치사, 살인교사, 가정폭력, 악덕변호사, 대기업의 환경오염 등을 소재로 다뤘고, 그 중에는 실제 사건을 모태로 한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안전한, 시사성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날카로운 소재들을 명민하게 다루는 것이 완성도와 대중성 모두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검찰을 떡찰이라 부르는 한국사회, 집시법, 국보법, 비정규직 문제, 군대문제, 교육문제, 부패와 속물주의, 정치적 누명, 금권주의, 이 모든 것을 뚫고 애타게 정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법정물로 시청자의 카타르시스를 추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솔직히 시간적 한계, 공부와 능력의 부족, 위험부담 때문이지만, 앞으로의 법정물이 독자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옥토이기도 할 것이다.

KBS드라마는 연속극 전통의 강호라는 이미지와, 미니시리즈에서 소신 있고 진취적인 작품을 낸다는 이미지가 공존한다. TV드라마에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르물은 공영방송의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할뿐더러, 장르적으로 드라마 작법을 선도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파트너가 개척한 부분에 있어서의 평가와 함께, 미처 도달 못한 완성도와 무책임했던 제작 상황에 대한 엄격한 비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늘 ‘개척’만 하고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탄탄한 경험의 토대 위에 명작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파트너>의 시즌제 제작이 팬들의 염원이 되고 있는 이유도, 한국 드라마에서 진취적인 작법을 KBS드라마가 보여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 by | 2009/09/17 01:31 | TV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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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도 그렇지만
국민참여 재판이 가지는 의의와 한계에
조금 더 할애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어려울 때면
범작을 내놓고도
스스로는 걸작이려니
자지러지는 사람들도 많은데
수작임에도
공,과를 건조할만큼
딱 부러지게 정리해 놓으셨네요
탄이님의
미래가 지나치게 기대 됩니다.
그리고...제 웹 상의 모습이 현실계보다 나은 모양입니다. 기대에 부응해야할텐데^^;
파트너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안' 봤더구나...
왜일까...
요새는 케이블 재방으로도 많이 보고
파일로도 다운받아 보는데
내가 느끼기엔 본방으로본 사람 이외엔
거의 보지 않은 것 같다.
왜일까...
결론은...
너 연출할 때 잘하라는ㅎㅎ
나 할 때 잘......할 수 있을까? 험험
다운 받아 볼 만큼 차별화된 매력과 중독성이 적었나 봅니다......
법정 드라마로서의 특색이나 이런 건 이미 잘 말씀해주셨고..무엇보다 제작진의 고민이 치열했던 거 같으네.. 막 시청자로서는.. 아줌마 변호사 캐릭터가 조금 더 (여)성적으로 매력적이었으면
얼마나 긴장감 넘쳤을까? 전면은 아니더라도, 모든 드라마의 심연에는 역시 그런 게 있어야 하나봐 ㅋㅋ
의미있고 재밌는 시간 보낸 거 축하하고, 부럽네- 덧붙여, 고생많았습니다..
새로운 드라마 하는 중인데 그럭저럭 몸 누일 곳을 찾고 있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