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념

모 선배가 나에게 냉소주의자를 두 부류로 나누었다.
'태도로서의 냉소'를 취하는 사람이 있고 '수사로서의 냉소'를 취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용어 선정은 그리 적확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 개념 구분은 꽤 흥미로웠다.

끝없는 열정가로 보이는 사람은
사실 자기 자신의 욕망에 이기적으로 집중하기 때문에
그토록 열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집중할수록 타인에겐 애초에 기대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기와는 다르게 타인에 대해 근본적으로
냉소를 전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태도(전제)로서의 냉소주의자.

그리고
기실 차갑고 냉소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사실 타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그와 소통이 가능하기를, 그가 도덕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기를,
그가 나의 마음을 이해하기를, 그가 올바른 행동을 하기를...... 이런 기대들이
현실적으로 아주 드문 순간순간에만 성취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잦은 기대가 좌초됨으로써 오는 스트레스를 막기 위하여
수사(표현)로서의 냉소를 취한다는 것이다.

보여지는 이미지와
근본적 마음의 태도는
상반된다는 이론인데,
거칠긴 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대입해가며 놀기 좋은 공식이다.

최근에 어떤 단념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로써 내가 가진 냉소의 뿌리가 뽑힌 기분이 든다.
나의 냉소가 전제로 하고 있던 사람에 대한, 세상에 대한, 나에 대한
어떤 기대가 무너진다.
그 기대가 깨지니 나 자신이 품고 있는 욕망이 선명해진다.

이것은 성숙이 아닌, 강요된 성장이다.
선배의 거친 구분에 대입하자면
'수사(표현)로서의 냉소주의자'에서 '태도(전제)로서의 냉소주의자'로 전이 중인 것이다.

(쓰다 보니, 태도 -> 전제로서의 냉소/ 수사 -> 표현으로서의 냉소
이렇게 바꾸는 게 더 맞는 표현으로 보인다. 어쨌든,

의외로 평범한 이야기다.
세상과 이상에 대한 기대를 단념하고
나, 내 가족, 내 새끼에 집중해서 한 세상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들이 '전제로서의 냉소주의자'이며

그 전제를 인정할 수없어 괴롭게 몸부림치는 새로운 세대가
'표현으로서의 냉소주의자'들이 될 것이다.

그렇고 보면, 청년 정신이란 세상에 팽배한 단념과 욕망을
냉소하는 정신인 것 같다.
청년에게, '냉소는 나의 힘'인 것이다.

냉소를 동력으로 버텨오던 내가
냉소를 단념하게 생겼다.

다음 동력은, 몰염치한 욕망의 성취일까
아니면 주변 상황에 맞춘 자그마한 마취성 목표들일까.








by 탄이 | 2009/10/28 01:26 | 탄이's 다이어리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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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구름 at 2009/10/31 22:16
그러네 정말.. 나는 어떤 '수사로서의 냉소주의자'를 알고 있는데 항상 그 사람은 자기 본심과 달리 왜이렇게 칭얼댈까..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해석이 되네. 근데.. 어떤 기대를 단념했어?
Commented by 구름 at 2009/10/31 22:24
이제 이사가니까. 진과 종종 번개. ㅋ
Commented by 탄이 at 2009/11/02 00:55
그다지 새로운 것들은 아니에요. 다만 이제야 깊숙이 느꼈달까. 늦는거지 뭐.
정회가 추천했던 연남동 맛난 초밥집에 정회 결혼하기 전에 가야할텐데.
Commented by 유부정회 at 2009/11/05 02:27
흠 구름이 수정언니였구만.
결혼 1달전 주말부부된 골든벨녀로선
늘 시간이 흘러 넘친다는것만 기억해두라규.

얘기하며 놀기좋은 구분법 나와서 말인데,
전에 수정언니가 들고나와 박수받았던 4/4분면 비슷한걸 두개 더 만들었어.
계급의식과 현실조건에 관한거랑
실제 지성과 자기이미지의 괴리에 따른 연애패턴 시계열 모형이야.
연남동 초밥집으로 ppt 준비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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