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막극 제작기8 - 장르 (액자가 된 소녀)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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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1. 어떤 판타지인가.

 

 이 작품의 장르가 뭐냐고 질문을 받으면 '일상적 판타지'라고 답하곤 했다. 그러나 단지 '변신'을 모티브로하는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이야기 적으로 낯선 것이 많다. 왜 변신을 하게 된 것이고 어떻게 돌아온 건지에 대해 모호하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제일 어려웠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다시 기획의도로. 세월호. 아이들은 죽어갔고 부모들은 이걸 지켜봐야 했다. 끔찍한 무능과 부패가 부른 참혹한 결과였으나, 하필 왜 그들이 희생되었어야 하는가는 설명할 수 없다. 왜 하필 나일까. 내가 뭘 잘못 했기에. 온 힘을 다해 배의 침몰 이유와 무능과 부정부패의 고리를 밝혀내도 그 슬픔은 어찌 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백일 하에 밝혀지면 그나마 그 죽음에 의미라도 실릴 수 있다. 역사의 발전은 대체로 억울한 죽음의 무의미성을 견디지 못한, 살아남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것 아니었는가. 그러나 세월호는 그 의미 부여조차 조롱과 따돌림 속에 침몰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이야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할아버지의 품에 돌려주는 일이었다.

     

(프레시안 손문상 화백의 그림)



  이유를 알 수 없는, 내게 벌어진 재난. 이유를 알 수 없이 우리는 태어났고, 이유를 알 수 없이 우리는 죽어간다. 극으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쟁취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일 뿐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외부의 세상과도, 자기 자신과도 싸운다. 그 싸움 과정에서 소중한 것을 잃기도, 지켜내기도 한다. 성택 또한 그렇다.

 

  변신의 이유를 명백히 밝히면 전달하고자 했던 삶의 무작위한 잔혹성과 그에 대처하는 인간이라는 주제가 깨져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것이 이 드라마가 일상적 장르 안에 수납되지 못한 이유였다. 세월호 참사가 상식적으로 수습이 되어갔더라면 아마 장르 규칙에 따른 작품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사회물이나 가족물. 그러나 현재 극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2. 마술적 사실주의

 

  스스로의 작품을 어떤 '주의'속에 가두는 일은 어리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학 사조의 명칭을 가져오는 이유는, 이 작품의 장르를 '일상적 판타지'라고 명명하기에는 오류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판타지는 그 안에서 스스로 인과 관계가 분명하다. 반면 <액자가 된 소녀>는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않고 뛰어넘어 보는 사람에게 맡겨 버린다. 이런 방식을 가져온 이유는 작품이 기반한 우리 현실에 있었다. '액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인과관계에 따라 상징적으로라도 데리고 돌아올 수 없는 우리의 현실에.

    



  어의에 대한 몇 가지 인용을 찾아보았다.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는 현실 세계에 적용하기에는 인과 법칙에 맞지 않는 문학적 서사를 의미한다. (중략) 주목할 만한 점은 마술적 사실주의가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독재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며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표현이 순화되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리 법칙을 따르는 - 따르는 척이라도 하는 - SF류의 문학이나, 작품 내에 일관된 규칙을 갖고 있는 판타지 문학과는 달리, 마술적 사실주의는 예측 불허의 스토리로 구성되거나, 적어도 묘사하는 사회가 매우 특별하다. - 위키 백과

 

  "보르헤스는 '서구인에게 세계는 제대로 작동하는 코스모스이지만 아르헨티나 인에게는 혼돈이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마술적 리얼리즘 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전통적인 리얼리즘을 해체, 재구축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 때 강조되는 것이 환상성인데... (중략) 전통적인 재 현의 법칙과는 다른 법칙 위에 기초한 또 다른 현실로 인식된다." - 네이버 지식사전

 

  인과 관계에 따른 판타지 장르의 이야기를 구축하려는 게 - 너무나 당연하게도 - 처음 나와 작가의 목표였다. 그러나 회의를 거듭하며 구성하면 할수록 그 속에 담긴 의미가 틀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우연의 집합체인 현실을 인과 관계로 포착하여 픽션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가능하다. 그러나 변신의 원인을 설정하고 변신을 푸는 사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내가 원한 바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건 이를테면 '유족 승리의 플롯'이다. 이런 영웅 서사는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지도, 위로하지도 못한다. 성택의 과거 잘못을 악의에 기반한 치명적인 것으로 만들면 '유족 속죄'의 플롯이 된다. 기획 의도와 거꾸로 간다. 한편 '유족과 변신 가해자'의 대결 플롯은 액션 영화의 플롯이 될 법하지 반영과 위로가 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소거법을 바탕으로, 환상을 통해 불행의 보편성을 불행의 단독성으로 변화시키는 이야기가 틀을 잡아 갔다. 그리고 그 환상과 변신의 기제를 명백히 설명하면 할수록 기획의도에서 벗어났다. 보르헤스의 표현처럼, 혹은 카프카의 소설처럼, 설명될 수 없는, 혹은 설명할 필요 없는 '있을 수 없는 일' 앞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바를 행할 뿐이다.

 

  문학에서는 이미 100여년 전에 사용된 서사 기법을 TV드라마에 낯설지 않게 가져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단막극이라 할지라도 'TV 드라마적 관습'에서는 많이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하도록 이야기를 짰다. 소녀가 행방불명이 되었던 것인가 아니면 변신했던 것인가. 그리고 그 두 가지 해석의 갈림길은 '구출 장면'이다. 이것이 치매 노인의 꿈인가, 아니면 실제 일어난 현실인가. 하지만 해석의 단초가 너무 은근했던 것인지, 아니면 의도한 바의 혼란 자체가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었는지 설왕설래가 많았다.

    



 3. 대본 허가

 

  대본이 나오고 나서 작품을 엎고 다른 걸 하는 게 어떻겠냐는 소리를 들었다. 역시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대본에 대한 우려였다. 개인적으로는 데뷔작으로 준비하던 다른 작품이 이미 무기한 연기가 된 상태에서 대안도 없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이리도 전달이 안 되는 걸까. 통탄할 노릇이었다.

 
 인턴작가합평회에서 발표되었을 때의 반응은 그리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방송을 목표로 작가와 연출이 같이 작업한 대본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의 가능한 반응은 원래 격려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각자의 우려를 얼마나 숨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 가장 고마웠던 건 정성어린 조언을 해준 몇몇 선배들과 지인들이었다. 남의 데뷔작 대본에 대한 피드백이란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 의견을 전해준 분들게 깊이 감사하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작업은 훨씬 불안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4. 실존

 

  오 선생님과의 개별 리딩 중 하루였다. 그 전에 정인선 씨와 같이한 리딩 때 컨디션이 좋지 않으셔서 난 걱정이 태산이었다. 중얼중얼 스스로 용기를 북돋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 세 살 동생이시라구.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지금도 감독 잘 하고 있잖아? 이순재 선생님보다 두 살 위. 영화 <아무르>의 주인공 장 루이 트린티냥보다도 세 살 아래. 치매가 이제 시작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을 뿐이야. 본인이 주인공인 연극도 막 끝내셨는 걸. 나만 정확하면 돼. 이날은 양세윤 선배의 도움으로 KBS별관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화창한 가을 날이었고, 선생님의 표정도 날씨만큼 밝았다.

 

  그 날의 리딩에선 선생님의 컨디션은 무척 좋았다. 이렇게만 된다면야! 사실 까마득한 제자가 리딩을 요청하는 걸 받아주시는 것도 선생님의 인격이었다. 선생님은 액자와의 첫 대화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된다고 하셨다. 어린 제자 연출은 그 앞에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일단 액자를 보고 말씀하신다고 해도 현장에서 상대 배우가 늘 상주할 것이고요, 최종 결과물에서는 액자가 말할 때 빛이 난다거나 하는 효과를 넣을 생각입니다. 그래서 성택의 대사나 리액션이 혼자 하는 연기로 보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가만히 들으시다가 옆에 놓인 커피컵을 앞으로 옮겨 놓으며 고개를 저으셨다.

 

  "그래, 연출하시는 분의 생각이 맞지만, 꼭 그게 중요한 건 아닐 수도 있어요. 누가 뭐라고 하건 이 인물에게 있어서, 그러니까 이 커피 잔이 말을 건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실존이잖니? 그걸 표현하는 건 배우의 몫이지. 내가 그걸 잘 살아낼 수 있을까 걱정이 돼요. 그러니까 액자가 빛난다거나 하는 건, 굳이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데 울컥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치솟아 올랐다. 네 선생님. 누가 뭐라건 내가 거부할 수 없이 살아가야 할 실존. 그걸 얘기하고 싶었나 봅니다. 선생님이 사라지는 기억과 싸우시고 계시듯, 제가 극에서 어떤 의미라도 길어올리려고 발버둥치듯... 선생님과 이 시간을 갖고 싶어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나 봅니다......

 

  이 작품을 위해 선생님을 만난 모든 시간 중에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덧글

  • 2015/06/10 22:4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6/11 00:3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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